최근 개인정보보호법의 시행으로 기업 IT부서는 관계법령에 저촉되지 않을 보안정책을 확립하느라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보안정책의 본질은 법령의 준수가 아니라 기업과 고객정보보호 그 자체다. 특히 제조업계 IT 파트의 본질적인 역할은 생산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제조 프로세스를 구성하고 개선하는 것이다. 보안을 강화하고, IT 인프라와 네트워크를 정비하고, 시스템을 복구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가지와 같은 것이지만, 뿌리는 아닌 것이다. 한민기 LG화학 정보전략담당 상무는 가지가 많을수록 그 근본이 되는 뿌리가 더욱 단단히 땅을 딛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나리 기자 nrjeong@ciomediagroup.com

ECM(Enterprise Content Management), GSI (Global Single Instance), 사내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 보안 체계 수립 등 LG화학 IT 파트는 지금 숨 쉴 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진두지휘하는 함장 한민기 상무는 어느 하나 치우치지 않은 탁월한 균형 감각을 발휘하는 매 순간마다 기업 내에서 IT가 존재하는 이유를 생각한다. 그에게 IT는 단순한 임무나 책임이 아니라 소명이기 때문이다. CIO에서 CISO로 2008년부터 4년째 LG화학 CIO를 담당해온 한민기 상무는 소위 ‘IT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흔히 IT 종사자들의 꿈이 ERP를 직접 구축해 보는 것인데, LG화학 ERP 구축은 물론 공장 MES도 직접 구축했다. 현재는 CIO 대신 CISO란 직함을 쓰고 있다. 한 상무는 “B2B 회사는 일반적으로 고객정보를 다루지 않기 때문에 B2C 회사에 비해 보안에 대한 이슈가 적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LG화학의 경우 업계 1위 제품이 많기 때문에 보안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CSO의 역할을 두 가지로 분류했다. 하나는 ‘기업의 목적에 IT 시스템이 제대로 뒷받침할 수 있도록 총괄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어느 수준으로 보안 정책을 수립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후자에는 SI의 보안에 대한 프로젝트 구성, R&D 정책, USB 사용의 허용 여부, 출입구 엑스레이 검사대 설치 등 세부적이고 다양한 방안들이 포함된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이런 보안 행위들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엑스레이 검색대를 설치하고, 방문객의 USB 용량까지 체크하는 등 보안과 관련해 최고 등급에 가까운 정책을 적용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핵심 데이터의 유출을 막을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면서 “보여주기 식의 형식적인 정책이 아닌 실제 효과가 있는 보안 정책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IT 전문가의 요건, 컨설턴시 LG화학은 매년 fMP(focused Master Plan)를 시행한다. fMP는 12개 사업부의 현재 이슈, 시장상황 등을 분석하고, 어떤 IT과제들이 수행돼야 할지를 발굴하고 제안하는 프로그램이다. 특히 현업이 RFP를 보내기 전에 먼저 알아서 준비하는 것이 중요 포인트다. 한 상무는 “LG화학의 경우 LG CNS가 있기 때문에 필요한 시스템은 이미 대부분 구축돼 있다”면서 “IT 전문가는 컨설턴시(Consultancy)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컨설턴시란 컨설팅 능력과 IT 전문성을 합한 개념이다. 전문 IT 지식과 현업의 비즈니스를 융합해서 최적의 솔루션을 제안하고 설득할 수 있는 인재만이 LG화학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다. 모든 IT의 고민이기도 한 현업과의 마찰 극복 노하우도 같은 맥락에서 보면 간단하다. 한 상무는 “현업의 업무를 이해하는 데는 프로세스를 아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LG화학의 ERP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1,400개에 달하는 모든 파트의 이슈를 전부 분석하고 세팅하면서 거의 모든 업무의 프로세스를 파악하게 됐는데, 그것이 현업을 이해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됐다. 현재 그의 실력과 노련함은 ERP라는 커다란 기둥을 세우고, GSI, DR 프로세스 구축, 정보보안 등의 축으로 살을 붙여 나가는 과정에서 얻어진 자연스러운 부산물이었다. ECM의 성공적인 안착 비결은 접근법 차별화 LG화학은 문서중앙화(Enterprise Contents Management, ECM) 시스템 구축이 한창이다. 작년 10월 처음 시작한 ECM은 점차 그 대상범위를 넓혀가며 활발히 진행 중이다. 한 상무는 “문서중앙화 시스템은 임직원들이 PC에서 문서를 작성한 후 PC가 아닌 중앙 서버에 저장하도록 해 기업 차원에서 문서 등 콘텐츠를 공유, 관리하는 것”이라며 “가상데스크톱환경(VDI)을 구현한 후 전자문서관리시스템(EDMS)·전자콘텐츠관리(ECM) 시스템을 적용하거나 PC 저장을 제한하는 소프트웨어와 PC보안 소프트웨어를 적용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데스크톱 가상화와 개념은 비슷하지만 가상머신(VM)이 아닌 직원의 PC를 그대로 활용한다. 또 다른 점으로는 관리 대상이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 PDF와 도면 등 텍스트를 포함하는 문서라는 점이다. 현재 모든 부서에서 적용하고 있지는 않으나 기술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우선순위가 높은 부서에서는 이를 통해 보안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중앙 관리 형태의 시스템을 도입하는 경우, 처음에는 직원들의 거부 반응을 극복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한 상무는 ‘콘셉트 차별화와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비결이라고 귀띔했다. 직원들이 감시당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 불쾌할 수 있지만, ‘감시’가 아닌 ‘보안’을 콘셉트로 설득한 것. ‘당신이 작성한 모든 문서는 보호받을 가치가 있기에 이를 안전한 곳에서 보호하는 것’이라고 인식을 전환시킴으로써 직원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이끌어냈다. 물론 100MB 이내의 예외 디렉터리를 허용, 개인적인 문서들을 개별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해 프라이버시를 존중한 것도 비법이다. 모든 정책의 토대는 생산성과 효율성 한 상무는 “최근 발생한 한전의 블랙아웃 사태가 어떻게 보면 성찰의 계기가 됐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다. ‘전기’라는 것은 인프라에 해당한다. 매우 중요하고 필수적인 것인데 그 가치를 모르고 사용하는 것이다. 그는 “이번 일을 계기로 많은 기업들이 기본 인프라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어느 회사든 ERP가 다운되면 업무가 마비된다. 물론 회사마다 응급시스템(Emergency System)이 있어서 복구 전까지 임시로 업무를 처리하기는 하지만 완전한 업무 처리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프라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안 돼 있다. 한 상무는 이에 대해 “IT 조직이 ‘고작’ 인프라 운영만 하는 조직이라는 현업의 인식이 원인”이라고 말하면서 “그 인식을 불러온 것이 IT 조직 스스로의 잘못”이 크다는 반성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이런 IT 조직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했다. LG화학 IT 조직은 단순히 인프라 운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새로운 프로세스를 정립해주고, LG화학의 모든 프로세스에 대한 총자산화, 프로세스를 만들고, 갱신하고 모니터링하고, 이런 PDCA(Plan, Do, Check, Action, 슈하트가 만든 슈하트 사이클) 사이클링의 주체가 IT에 있도록 자리매김했다”며 모든 IT 조직이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제조 회사의 핵심은 생산이다. B2B 회사의 특징은 고객이 직접적으로 어느 회사의 제품인지를 인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디자인이나 브랜드를 알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제조’ 그 자체인 것. 한민기 상무 역시 역량의 2/3는 공장에 쏟는다. 같은 맥락에서 한 상무는 CIO의 역할에 한계를 짓지 않는다. 회사마다, 업종마다, 규모마다 달라야 하며, 일률적인 잣대로 CIO의 역할을 규정하고 비교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역시 CIO이기 이전에 LG화학의 기업 가치를 향해 함께 뛰는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한 상무는 “공장시스템(MES), 설비관리(AMS), 품질관리(QMS)가 LG화학의 핵심이다. 여러 IT 시스템 구축도 중요하지만 기본은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IT 부서 역시 제조 시스템 구축과 제조 공정의 모든 시스템을 분석해서 불량이 나지 않도록 개선하는 데 대부분의 역량을 투입해야 하는 것이다. ECM 등 나머지는 가지에 해당하는 것이며, (IT 시스템은) 뿌리를 튼튼히 하기 위한 부수적인 활동이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민기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2001-2002 LG화학 ERP 구축 2003-2004 해외 ERP Roll-out 2005-2007 정보전략팀장 2008- 현재 정보전략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