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0 (월)
“정말 고릴라가 있었어요?”
세아그룹 박승남 CIO seungnam.park@snet.co.kr
지나친 몰입은 함정이다
사람은 특정한 것에 주의를 집중하고 있을 때 예상치 못한 사물이 나타나면 이를 알아채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교통사고를 내본 사람이면 동감할 것이다. ‘분명 아무것도 없었는데…’ ‘자전거가 갑자기 나타났어요…’
IT에서도 마찬가지다. CIO를 괴롭히는 많은 장애물들을 생각해보자. 대부분 오류는 사람이 일으키는 것인데, 희한하게도 본인이 그 부분에 대해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프로그램 코딩을 한 당사자가 원인을 찾아내는 경우는 드물다. 지나친 몰입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앞서 말한 실험에서도 왜 어떤 사람은 고릴라를 보았고,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했을까? 과연 지능의 차이일까?
하버드의 두 교수가 처음 실험을 한 대상은 하버드 대학생이었지만, 이후 실험에 참가한 다른 중하위권 대학교 학생들과 차이가 없었다. 라디오를 켜놓고 요리를 하면서 세탁기를 작동하고 친구와 통화를 하는 멀티태스킹에 능하다는 여성과, 단순한 남성의 차이는 있었을까? 이 또한 별 차이가 없었다.
주의력 사용은 제로섬 게임과 같아서 어느 하나에 주의를 기울이면 다른 것에는 소홀하게 된다. 만약 고릴라 실험에서 흰 옷을 입은 사람들 간의 패스 횟수를 세는 것에서, 그 패스 중 바운드 되는 패스만 세어보는 것으로 집중력을 높이게 변경하면, 고릴라를 못 보는 비율이 더 높아졌을 것이다. 고릴라를 못 보는 것은 인간의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인 것이고, 볼 수 있었던 사람들은 주의력을 약간 분산한 상태였을 뿐이다.
주위 돌아보고 소통하는 훈련 필요
어떻게 이 집중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정답은 T자형 사고, 그리고 깊게 생각함과 더불어 넓게 주변을 돌아보는 훈련이다.
그리고 이 함정에 빠지지 않게 주위와의 ‘소통’이 또 하나의 예방책이다.
이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을 주관자의 의도대로 진행하기 위한 키워드는, 사람들을 집중시키기 위한 ‘조용함’이다. 만약에 동영상을 보다가 누군가 ‘어! 저게 뭐지?’라고 소리쳤다면, 고릴라를 못 보았던 사람들의 주위가 환기되면서 가슴을 치고 있는 고릴라를 모두 인식했을 것이다.
분명 몰입은 좋은 태도이고 성과를 내기 위한 필요항목이지만, ‘저게 뭐지?’와 같은 ‘소통’이 없는 몰입은 이렇듯 함정에 빠지기 쉽다. 당시 해당 부서의 두 팀장이 모두 고릴라를 못 봤다고 해서 당황스러웠는데, 이 때문에 두 사람이 몰입에 강한 I자형 성향이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결국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만이 고릴라를 볼 수 있게 한다. 부서원들이 실험용 모르모트는 아니지만, 재미가 붙은 필자는 또 다른 테스트를 해봤다. 이전 실험이 ‘몰입의 함정’이었다면 이번에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아는 것의 차이, 확신의 착각’이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100원짜리 동전의 경우를 보자. 동전 앞면의 인물은 누구일까? 이순신 장군이 정답이다. 그럼 이순신 장군이 어느 쪽을 보고 있을까? 오른쪽? 왼쪽? 답은 오른쪽이다.
이번 실험도 간단하다. 백지 한 장 나눠주고 자전거를 그려보라고 했다. 쉽게 그릴 수 있도록 자전거의 구성 요소인 핸들, 프레임, 페달, 체인, 앞바퀴, 뒷바퀴, 안장을 나열했다.
자전거쯤이라고? 여러분도 한번 그려보시라. 늘 보던 자전거, 당연히 안다고 생각하는 자전거가 각자의 손끝에서 정말 다양하고 기기묘묘한 형태로 재탄생 하였다. 아래 그림은 그 중 잘 그린 축에 드는 것이지만, 뭔가 어색하지 않은가?
소통 전제된 몰입이 IT인력의 기본기
IT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IT인력들이 ‘나는 현업업무에 대해 잘 안다’는 확신으로 인해 일을 망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업무프로세스의 ‘Why’에 대한 완벽한 이해 없이 업무 활용에 대한 경험만으로는 현업이 바라는 정확한 결과물을 얻기 어려워 보인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라는 책 속에 그 예가 나온다.
‘2008년 Top Coder Open이라는 프로그래밍 대회에서 우승한 팀 로버츠는 지식 착각에서 벗어나 일의 핵심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요구조건을 충족하는 프로그램 개발에 주어진 시간은 단 6시간이었는데, 그는 다른 경쟁자들과 달리 처음 한 시간을 요구되는 사양을 연구하고 담당자에게 30개 이상의 질문을 하는데 소비했다. 도전 과제를 완전히 이해한 후에 코딩을 시작한 로버츠는 요구된 사양만을 정확하게 구현된 프로그램을 완성했다. 프로그램은 제대로 작동했고 작업도 제시간에 끝났다. 자신이 업무를 다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초기에 투자한 시간이 결국엔 훌륭한 성과로 결실을 맺은 것이다.’
아마 다른 프로그래머들은 제한된 시간이라는 환경도 있었겠지만, 요구조건에 대해 잘 안다는 생각에 ‘아! 이것!’ 하며 바로 코딩작업에 들어갔을 것이다.
필자가 행했던 몇 가지 실험을 통해 비록 뻔한 결론이지만 소통이 전제된 몰입,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꼼꼼한 검증이 IT인력의 기본기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됐다.
<박승남 세아그룹 상무>
서울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에서 학사, 석사를 마치고 핀란드 헬싱키경제대학(HSE)에서 Executive MBA(2009)를 마쳤다. 1989년 IBM에 입사했으며 이후 CISCO KOREA, 대교를 거쳐 현재 세아그룹 CIO로 재직 중이다.